: 기술의 발전으로 알아보는 한글의 역사학
: 한글을 입력하는 기기의 형태 따라 변해
: 변화 된 언어는 사람의 인식과 가치관에 영향
: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언어는 이해의 수단
몇 일 전, 강원도교육청에서 외래어나 외국어를 섞어 사용하는 ‘외계어’ 수준의 신조어들을 뿌리 뽑겠다며 ‘우리말 바르게 쓰기 운동’을 진행한다는 기사가 업로드 되었습니다. 사실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제작하는 홍보물에서조차 '외계어' 수준의 용어들은 수두룩하죠.
'AI 데이터 레터리시 모델학교', '블렌디드 수업',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등 직관적이지 않고 온갖 형태의 언어들이 섞여있는 기묘한 명칭들이 정부사업이나 공공기관의 프로그램 명칭으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언론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에도 우리 말의 파괴는 엄청납니다. 그러다보니 방송사의 프로그램 자막에서도 언어의 파괴가 심각합니다. 실제로 방통위에서 TV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징계는 그 현실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언어의 파괴는 수십 년 전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특히 통신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급속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생각 해 볼 이야기는 '기술의 발전' 을 통해 이해해보는 한글의 역사입니다.
[90년대, '함축'된 우리 말]
1990년대에는 일반인들의 주된 통신수단이 유선에서 무선로 전환되던 시기였습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기업 회장님이나 고위 정치인들처럼 이른 바, '높으신 분'들이 업무용으로 사용되던 그들만의 전유물이었죠.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만, 당시만 해도 밖에 나간 사람에게 수시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습니다.
그럴 때 등장했던 혁신적인 기기가 있었으니 '무선호출기', 이른 바 '삐삐'입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기기에 연락을 요하는 연락처를 남기는 용도로 처음에는 사용되었지만,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아 전달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숫자의 조합의 의미를 부여해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암호였습니다. 삐삐로 전달 할 수 있는 숫자에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함축시켜 전달한 것이죠. 물론 의미가 함축된 메시지는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이들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당시의 사회적 합의는 비교적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삐삐는 최초의 '보급형' 무선통신기기였고, 약 2천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는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삐삐로 전송된 숫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변화의 파도를 겪기 시작한 '우리 말 한글'은 2000년대 들어, 현재의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된 어떠한 기술의 대중화로 인해 또 한번 커다란 변곡점을 맞게 됩니다.
[00년대, '변화'하는 우리 말]
2000년대 초, 드디어 엄청난 게 등장했습니다. 바로 '인터넷'의 대중화였다.
TV만 틀면 ADSL, VDSL과 같은 인터넷 광고를 앞다퉈 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사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인터넷이 대중화 되고, 심지어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종량제'가 아닌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정액제'요금이 정착되면서 누구나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커뮤니티)이 확장되면서 그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들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2000년대 이전에도 전화선을 활용한 '모뎀'을 이용해 인터넷을 접속 할 수 있었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그 당시에는 사용한 만큼 비용을 내야 했었고, 전화선을 활용하다보니 인터넷을 하는 시간에는 전화가 되지 않아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당시의 '온라인 공간'은 굉장히 마이너한 공간이었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만의 소통창구였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게 되면서, 가상의 공간에는 또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말 그대로 '신세계'가 건설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현실 공간과 온라인 공간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실에서 지켜야 하는 '윤리'나 '규칙' 들이 온라인에서도 조금씩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대중화 초기에는 온라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용어와 규칙들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며 현실세계와 거의 동일한 형태로 소통했지만, 인터넷의 보급속도에 비해 인터넷 윤리 교육의 진행속도는 더뎠기에 부정적인 요소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에서도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기존의 규칙에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처럼 인터넷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변화시킨 것은 바로 '언어' 였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조금씩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햏햏', '안냐세요 방가방가', '지성함다', '담탱' 같이 지금보면 다소 우습게 비춰지는 언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언어들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공고했던 '언어의 규칙'이 젊은 세대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죠. 특히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해 소통을 하다보니, 90년대 '삐삐'와 달리 숫자가 아닌 한글 그 자체를 입력할 수 있었기에 보다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일상에서도 생각과 가치관이 조금씩 변화하게 됩니다. 일상 언어에 인터넷 언어들이 혼용되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하였고, 우리사회 또한 급속도로 변화와 발전의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인터넷 언어가 일상언어와 다르게 변화 되었던 표면적인 이유는 빠른 소통을 위해 들리는대로 입력해 언어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심리적인 기저에는 2000년대 당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며 사회가 변화하던 변혁의 시기였기에 새로운 '뉴 노멀'을 준비하던 과정 중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언어공해', '언어순화운동 캠페인'을 해야한다며 주장하거나, "미래에는 통신언어 번역사"가 유망 직업으로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웃지 못할 내용들이 버젓이 보도되었습니다. 그 당시 현실사회에서는 소중한 '우리 말'이 변형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마 굉장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있었던 듯 합니다.
[10년대, 우리 말이 '해체'되고 '재조합' 되다]
2009년 11월 28일, 한국에 '사실상 최초의 스마트폰'인 아이폰3Gs가 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월 18일, 국내 최초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모토로라의 '모토로이(XT720)'이 출시되었습니다.
(글쓴이가 당시 모토로이를 구매하기 위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확인하고 예약구매 했다는 전설이....아이폰살걸)스마트폰의 출현은 그야말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하게 되었고,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혁명적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삶을 인터넷에서 더 확장시켜 '스마트'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어디서나 내 손 안에서 인터넷이 연결되어 다양한 생산성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실 스마트폰 출시 이전(2000년대 후반 전후)에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한국형 SNS 싸이월드나 MSN,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들이 득세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이것들이 스마트폰으로 포팅되어 그 활용성과 가치가 극대화 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PC에 비해 기기 자체 성능도 부족하고 사용 효율이 낮았던 스마트폰은 PC의 기능을 대체하거나 보조하지 못했습니다. PC 외에도 카메라, 휴대폰의 기능들을 조금씩 가져와 가볍게 손 안에서 체험을 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오히려 PC와는 다른 역할이 부여됐죠.
그러한 이유로 고사양의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릴 수 없었던 스마트폰이었기에 카카오톡을 필두로 한 간소화 된 앱들이 출시되며 기존의 PC 프로그램의 기능과 역할들을 조금씩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모니터 화면에서 작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로 화면이 작아지고 '우리 말'을 입력해야하는 입력 장치가 넓은 키보드 자판에서 좁은 디스플레이 속 자판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였는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 또한 보다 줄어들고, 보다 간소화되었습니다. 키보드에 비해 많은 메시지를 표현하기엔 귀찮고 키보드 대비 피로감이 많기에, 기존에 키보드를 통해 입력했던 언어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점점 더 단순화하고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던 많은 단어들을 줄이기 시작했고, 'ㄴㄴ', 'ㄱㄱ' 같은 단어들이 이 당시부터 적극적으로 인터넷 상에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초에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트위터 등의 SNS의 확산으로 인해 언어는 점점 더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트위터의 경우에는 140자 이내로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그 해체의 속도를 가속시켰습니다. 이후에는 아프리카tv, 트위치 등 인터넷방송의 대중화로 인해 다양한 신조어들과 함께 언어들이 해체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문장구조를 벗어나 자음과 모음으로만 언어를 표현하기 시작했죠. 'ㄵ', 'ㄹㅇ', 'ㅇㅈ', 'ㄴㄷ', 'ㅇㅁㄹ', 'ㅗㅜㅑ' 등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언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방송자막 등에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즈아','뽀짝', '레게노', '알잘딱깔센' 처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신조어들 또한 온오프라인에서 활용되며 언어가 기존의 해체된 언어들이 조금씩 새로이 재조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회에 서서히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해 줄임말도 인식해 원래 동의어를 검색해 주는 등의 기능을 추가하여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인 방향이 아닌 자연스러운 사회의 흐름으로 편입 될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어 입력 기기의 변화로 인해 벌어진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일상언어와 온라인 언어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세대의 스펙트럼이 수십 년을 거치며 넓어지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럼 2020년, 앞으로는?]
2020년, 앞으로는 '우리 말'이 어떻게 또 변화할까요?
이것을 말하기에 앞서, 언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생각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기업이나 각종 이익단체들이 새로운 제품을 홍보하거나 어떠한 가치관이 담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할 때, 새롭게 용어나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위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말'의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긴 문장이나 복잡한 감정상태를 한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며 우리의 언어 사용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변화되는 언어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되고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물과 같이 자연스레 변화하는 것입니다. 다만, 언어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최소한 정부나 공공기관, 공영방송처럼 공적 의무와 성격을 지닌 집단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그 당시 기준의 표준어'를 준수하여 '언어 본질'이 훼손되는 것만은 막아야 할 것입니다.
언어의 본질은 그럼 또 뭘까요?
언어는 언어 그 자체의 보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배포되는 언어는 언어의 본질을 준수해야 합니다.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신조어나 '외계어'들이 공적인 언어로 배포되는 것은 공공의 이익과 대중의 보편적 이해를 제한시킵니다. 그러다보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늘어나 오히려 언어의 소통적 측면을 약화시킵니다 언어를 해체하고 변화하고 재조합시키는 것은 민간의 영역으로 내버려두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 2020년, 앞으로의 '우리 말'은 어떻게 변화 할까요?
현재의 흐름을 보아 추론해보자면, 앞으로 언어 자체가 중요한 시대는 점점 지나 갈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언어로서의 언어는 사라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유튜브를 필두로 한 동영상 플랫폼, 그리고 인터넷 방송들의 성장세와 함께 우리가 직접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는 그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해를 돕는데 필요한 매개체 정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영상을 통해 해외의 유명한 영상들을 보며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 이 세태를 반영하게 된 것이 몇 년 새 급속도로 확산 된 예능 트렌드인 '관찰형 예능'입니다.
내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내 생각을 언어를 통해 전달할 필요도 없고, 그저 패널들이 떠드는 생각을 이해할 정도의 언어만 알고 있다면 OK입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대형 인터넷 포털에서도 댓글 기능을 차단하고 약화시킨 것입니다. 차단하게 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사용 공간이 줄어들게 되었고, 언어 자체의 활용은 점점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저처럼 글을 쓰거나,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려야 합니다. 책과 신문을 읽지 않는 세태와 함께 유튜브와 인터넷방송이라는 영상플랫폼의 확대로 인해 점점 더 언어는 보여지는 것이 아닌, 이해에 필요한 내재적인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2020년 현재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도 놀랄만큼 우리의 언어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어는 나를 표현하는 가장 쉽고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특이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ㄹㅇㅋㅋ의 다른 글이 궁금하다면?
: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라면? '모든 것이 되는 법' 서평
: 내가 그린수소 그림, 대체 '그린 수소'가 뭐길래? ①
: 색상으로 알아보는 한국과 중국이 싸우는 이유?
'다양한 글쓰기 > :: [사회,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색깔로 알아보는 한국과 중국이 싸우는 이유 (2) | 2020.12.05 |
---|---|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한 주거경험(HX)의 중요성 (0) | 2020.12.04 |
댓글